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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02 from.훅님

g-15

흑흑 훅님과의 연성 트레이드로 얻은 이와오이입니다ㅠ0ㅠㅠㅠㅠ(야광봉(야광봉
살면서 훅님의 이와오이를 보게 될 날이 올줄이야…끄흡흐뷰ㅠㅠㅠㅠㅠ 넘나 행복해여…아름다운 세상…☆

150709 from.솜스님

이와오이/ 한여름 밤의 꿈

체육관 입구에서 출발하여 강을 따라 멀리 돌아오는 러닝 코스에서는 언제나 희미한 먼지 냄새가 난다. 그것이 운동장에서 묻어온 모래알들에서 나는 것인지 아니면 정비된 길에 얇게 깔린 분진으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땀내 섞인 텁텁한 흙내는 체육관의 달콤한 도료 향기와 함께 배구부의 여름 풍경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날은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세상 누구보다 제 상태를 잘 알면서도 오이카와는 아득바득 오후 연습에 참가했다. 주장의 책임감이라든가 모범 따위를 운운할 생각은 없었으나, 뒤처지는 기분이 드는 것만은 죽을 만큼 싫었던 것이다. 별생각 없이 연습을 강행한 데에는 운동깨나 한다는 남학생 특유의 오만함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좀 기분이 더럽긴 해도 큰일이야 나겠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목덜미에 맺힌 식은땀을 감추기 위해 그는 여름용 윈드브레이커를 꼼꼼하게 여몄다. 조금 덥긴 했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 스트레칭을 할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출발한 지 10분도 채 안 되어 오이카와는 제 섣부른 판단을 후회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흔들리는 시야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평소보다 한참 뒤에서 간신히 무리를 따라잡는 주장을 보고 킨다이치가 우환 가득한 표정을 지었으나, 걱정하는 후배에게 웃어줄 여유조차 없었다. 따가운 뙤약볕 아래에서 그는 홀로 으슬으슬한 한기에 몸서리를 쳤다.

한계에 다다른 것은 막 비탈길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흙먼지에 땀 냄새가 섞이기 시작하면서 손끝이 묘하게 차가워지는가 싶더니, 발밑의 땅이 우르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는 어느새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는 제 몸뚱이를 흐릿한 시야로 내려다보았다. 까슬한 모래알들이 드러난 살갗을 사정없이 긁고 있었다.

“주장!”

“…괜찮아.”

걱정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윙윙 울렸다. 옷감 한 장 너머로 축축하게 달라붙어 오는 손길과 타인의 더운 숨결. 동료들의 친절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히려 한없이 신경을 자극할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토기를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도리질을 쳤다. 토할 거 같아, 어지러워, 기분 나빠, 제발 날 좀 내버려둬. 모든 자극에서 도망치기 위해 그는 호흡을 멈추고 반쯤 몸을 웅크렸다. 지독한 질식감과 폭력적인 자극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새에 누군가가 인파를 헤치고 다가와 그의 어깨를 그러쥐었다. 숨을 쉬어 멍청아, 그렇게 말하고 제 등을 두드리는 남자를 발견하고 오이카와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겨우 숨이 돌고 나자 몸을 감싼 온기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와쨩, 떨어지지 마.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겨우 한 마디를 토해내고 소년은 뜨거운 손에 몸을 맡긴 채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와오이] 한여름 밤의 꿈

For 엘리님

By 솜스

눅눅하고 서늘한 새벽 공기 중에서 오이카와는 반짝 눈을 떴다. 여느 때와 같이 말끔한 제 방이 괜히 낯설게 느껴져서, 그는 벽지의 이음매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이불을 걷어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일단 오후 연습 중에 땅바닥에 구른 것 까지는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주장 주제에 열사병이라니, 소문이라도 났다간 쪽팔린 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야. 물론 소문이 나건 나지 않건 부원들의 조롱과 등굣길 내내 이어질 소꿉친구의 타박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별 이상한 꿈을 다 꾸네.”

어떻게 봐도 고백하는 거였지, 그거. 소년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간밤에 꾼 꿈을 천천히 반추해보았다. 사실인즉 그의 연애사에서 고백이란 심심하면 찾아오는 것이었기에, 꿈속에서 고백을 받는다고 해도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남자를 인기 있는 쪽과 인기 없는 쪽으로 분류하자면, 스스로 말하긴 좀 뭣하긴 하지만 오이카와는 두말할 것 없이 전자에 속하는 인종이니까. 다만 고백한 사람이 다름 아닌 그 자신이었고, 그 대상이 제 소꿉친구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꿈은 무의식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건 그야말로 악취미다. 기왕 꿈을 꿀 거라면 고백 장면을 보며 희망 고문을 당할 게 아니라 좀 더 그럴싸하고 새콤달콤한 청춘의 한 페이지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어차피 꿈인데 고백 말고도 여러 가지 있겠지. 포옹이라든가 키스라든가, 좀 더 화끈하게 가보자면 결혼이라든가. 좋네, 결혼. 아는 사람이란 아는 사람은 모조리 모아놓고 웨딩 마치를 울린 다음 이와이즈미 토오루가 되고 싶다. 이와쨩한테 성 정도는 양보해줄 수 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오이카와는 허탈하게 웃었다.

“짝사랑도 병이라더니.”

꿈 하나로 결혼까지 망상할 정도면 병중에서도 불치의 중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한동안 앓는 소리를 내던 남자는 뺨을 찰싹 두드린 다음 힘차게 몸을 일으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만나자마자 이와쨩한테 꿈 이야기를 해주는 건 어떨까. 어차피 제 입으로 못할 말이라면 꿈을 빌어서라도 그럴듯하게 이야기해 보자. 그리고서 신나게 웃고 잊어버리자. 좋아, 그렇게 하자. 오이카와는 어이가 없다며 혀를 내두를 친구의 표정을 상상하며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문을 열고 다섯 걸음만 걸으면 이와이즈미의 집이다. 그리고 소꿉친구의 아침잠을 방해하러 달려가는 건 함께 배구를 시작한 이래로 줄곧 계속되어온 그의 아침 일과 중 하나였기 때문에, 오이카와는 현관 앞에 비스듬히 서서 저를 기다리는 이와이즈미를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이와쨩이 어쩐 일이래! 오이카와씨가 친절하게 깨워줘도 맨날 늦게 일어나면서!”

“뭐, 그냥.”

이쯤 되면 짜증 난다느니 새벽부터 이불 좀 뺏어가지 말라느니 타박이 날아올 법도 하건만, 모처럼 힘차게 건넨 아침 인사에 대한 반응이 이 모양이다. 분명 문을 열기 전까지는 어제 쓰러졌던 건에 대해 잔소리나 좀 듣고, 하는 김에 꿈 이야기나 하며 사이좋게 등교나 해보려고 했는데. 밤에 잠이라도 설쳤나 아니면 어제 몸 관리 안 한 게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들었나. 제 컨디션 관리에 때로는 저보다 더 예민하게 구는 에이스에게 한 마디 농이라도 더 던져볼까 하던 오이카와는, 농담은커녕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어느새 바짝 다가온 소꿉친구가 아무 말도 없이 제 손을 잡고 끌어당겼기 때문이었다.

“뭘 멍청하게 서 있어? 아침 연습 늦겠다.”

“어? 응, 안 되지 지각은 안 되지. 오이카와씨는 주장님이니까. 근데 손은 왜 잡아?”

“이 정도는 보통 아냐?”

보통이라고? 허구한 날 끈적끈적 달라붙지 말라고 소리쳤으면서 이 정도가 보통이라고? 오이카와는 제 손을 꼭 잡고 말없이 걷기 시작한 남자의 옆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분명 뭔가가 변한 것 같은데 대체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영문을 몰라 환장할 지경이었다. 뿌리치려면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다. 그런데도 소년은 잡힌 손을 차마 풀지 못하고 잔뜩 긴장한 채 통학로를 걸어야만 했다. 평소 같았으면 손을 잡건 팔짱을 끼건 먼저 달려드는 건 분명 저일 텐데, 상대방이 먼저 손을 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장난이어도 좋고 변덕이어도 좋다. 둘이서 손을 잡고 걷는 건 거진 7, 8년 만의 대사건이다. 겹쳐진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간질간질해서, 오이카와는 무작정 체육관까지 달려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부실 문 앞에 다다라 열쇠를 꺼낼 때가 되어서야 이와이즈미는 손을 놓아주었다. 내심 아깝기는 했지만 오이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 하나둘씩 부원들이 아침 연습을 위해 모여들 것이다. 놀림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놔야지 별수가 있나.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추억 만들었다고 치자. 그렇게 대강 마음 정리를 해버리고 오이카와는 제 로커 앞에 서서 준비를 시작했다. 흘끗 쳐다보니 이와이즈미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오이카와.”

“엉.”

“너 컨디션은,”

“괜찮아, 괜찮아. 어제는 그냥 운이 안 좋았던 거고. 지금은 오이카와씨 완전 부활이야!”

“약골카와 주제에 말만 잘하네. 오늘 아침은 먹고 나왔지?”

“먹었어, 먹었거든요? 이와쨩 진짜 우리 엄마에요?”

“이게 진짜,”

아, 이건 맞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어차피 장난치다가 한 대 맞았다고 새삼 기분 나빠할 사이도 아니다. 날 이렇게 때리는 건 이와쨩 뿐이지만 이렇게 맞아주는 것도 오이카와씨 뿐이야, 알기나 해? 그러니까 좀 살살해주세요. 그렇게 빌면서 잔뜩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눈앞에 선 남자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진다. 정수리 부근을 가볍게 헤집던 커다란 손이 슬며시 내려와 제 뺨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얇게 땀이 밴 뜨거운 손이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꼭 제 살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만 달싹이는 친구를 보고 웃는 듯한, 아니면 살짝 찡그리는 듯한 애매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걱정시키지 마.”

그럼 먼저 간다, 그 말만을 남기고 이와이즈미는 부실을 나가버렸다. 오이카와는 아무도 없는 복도를 황망하게 쳐다보다가, 쳐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와쨩이 이상하다.

머리 한구석에서 사이렌 소리가 윙윙 울려대고 있었다.

***

지금까지 오이카와의 세상은 총 네 번의 종말을 맞이했다. 다섯 살 무렵 이사 때문에 하지메쨩과 못 만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타고난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중학교 3학년 그 어느 날에, 제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는 걸 실감했던 순간에, 그리고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예고도 없이 돌변했을 때.

그러나 오이카와의 세상에 운석이 충돌하거나 공룡들이 떼죽음을 당하거나 빙하기가 오거나 말거나, 아침마다 해는 잘도 떴고 휴교는커녕 자습조차 하지 않았으며, 연습 시합 일정은 빈틈없이 잡히고 있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잘만 돌아가는 일상에 소년은 짜증이 나다 못해 절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물론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평소보다 좀 덜 때린다고 해서 세상이 멸망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이카와도 아픈 건 싫었다.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마음이 이토록 괴롭고 껄끄럽고 힘들단 말인가. 가장 큰 문제는 막상 짝사랑의 대상이 제게 살갑게 굴어대니 오히려 제가 더 부끄러워진다는 점이었다. 남들이 보면 유난이라고 할 정도로 장장 십 여년을 붙어 다녔다. 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는 비밀 이야기도,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각한 이후에도 그랬다. 그러나 이와이즈미가 느닷없이 다정해진 이후로는, 아웅의 호흡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감수성 예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수험생 신분답게 오이카와는 이 사실이 너무나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이라면 베스트 프렌드로라도 남고 싶었는데.

주장이 이렇게 괴로워하거나 말거나 부원 중 그 누구도 이와이즈미의 태도 변화에 대해 물어봐주지 않았고, 오이카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뭔가가 이상하고 어색했다. 그렇다고 판을 마음대로 뒤집어엎기에는 달콤한 꿀의 유혹이 너무나도 컸다. 이름을 부르면 웃어준다. 달라붙으면 조금 어색해하긴 해도 순순히 받아들여 주었다. 단둘이 있을 때는 이와이즈미가 먼저 손을 뻗기도 했다. 그리고 등하굣길에는 손을, 그랬다. 충격적인 첫날 이후로도 이와이즈미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그의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아프지 않게, 그리고 쉬이 풀어버리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워낙 무뚝뚝한 얼굴이라 잘 티가 나지 않긴 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평소보다 배는 더 다정하게 굴어주는데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물어나 보고 싶었지만,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날까 봐 오이카와는 매 순간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난 이렇게 힘든데 매점이나 가고 이와쨩 이 나쁜 놈아. 홀로 남은 부실은 가지런히 정렬한 로커와 미니 보드와 걸상뿐이라 외롭기 짝이 없었다. 소년은 괜시리 코를 훌쩍이며 시계 초침을 셌다. 누가 오이카와씨 좀 신경 써 줬으면 좋겠다. 이와쨩이. 아니 이와쨩 말고 다른 사람이.

“넌 또 왜 이러고 있어, 정신 사납게.”

긴 기다림 끝에 부실의 문이 활짝 열렸으나 어차피 부실을 찾을 사람은 그놈이 그놈이었다. 더군다나 슬픔에 잠긴 주장은 내버려둔 채 이와이즈미와 함께 희희낙락 매점으로 향했던 하나마키가 요구르트를 쭉쭉 빨며 제 얼굴을 보자마자 한다는 말이 저런 소리다. 이쯤 되면 더 서러워질 구석도 없었다.

“이제 다 필요 없어. 오이카와씨 혼자 있고 싶습니다. 나가주세요.”

“왜 그래, 아직 더위 먹은 게 안 풀렸어? 머리 괜찮아?”

다 큰 사내자식이 낑낑거리는 소리가 어지간히 듣기 싫었는지, 전리품의 포장지를 막 벗기던 하나마키는 오이카와의 입에 슈크림을 통째로 쑤셔 넣었다. 이거 줄 테니까 좀 조용히 해봐.

일단 당분이 공급되고 나니 머리가 좀 돌아가는 느낌이다. 오이카와는 달콤한 바닐라 크림의 감미를 즐기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우유빵이 아닌 게 아쉽긴 하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은 했다. 사실은 별 네 개를 줄 정도로 맛있었다. 두 사람 모두 또래 남학생치고 단것을 좋아했던 터라 이전부터 미식에는 취향이 제법 맞았던 것이다. 스위츠 최고, 우유빵은 진리. 언젠가 쿠니미쨩도 끌어들여서 셋이 함께 케이크 뷔페라도 가고 싶다. 합숙이 끝나면 한번 쯤 갈까. 체중 조절도 해야 되니 합숙 전에 가는 게 좋으려나.

“이제 됐냐? 그만 먹고 나 줘. 마지막 하나였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미는 친구를 보고 오이카와는 재빨리 한 입을 크게 베어 물고 남은 조각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눈앞의 소년이 정말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였다. 소리는 없었지만 입 모양을 보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는 분명했다. 저 망할 새끼 저거. 물론 그런 말 따위에 끄덕할 성품도 아니었기 때문에, 오이카와는 모른 척 상담을 시작했다.

“맛키.”

“뭐, 왜, 뭐.”

“이와쨩이 이상하다.”

“너네 둘이 이상했던 게 뭐 하루 이틀이야?”

“너무해! 오이카와씨처럼 착하고 바르고 타의 모범이 되는 기특한 주장이 어디 있다고 그래?”

착하고 바른 학생 다 죽었네. 하나마키는 신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으나 오이카와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원래 하나마키와는 거리낌 없는 사이기도 했고, 상대를 골라잡을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지나가는 길고양이라도 붙들고 떠들어대고 싶을 지경이었다.

“최근 뭐라고 말해도 때리질 않고.”

“안 맞으면 좋은 거 아니야?”

“대신 이상하게 스킨십이 많아졌어.”

“원래 그랬어. 걱정하지 마.”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막 손도 잡고, 포옹도 하고.”

“그 정도는 맨날 하지 않았나?”

“아니거든요? 대체 오이카와씨를 뭘로 보는 거야?”

“뭐긴 아오바죠사이 배구부 명물이지. 무릎 베게도 하고 그러잖아.”

“어쩔 수 없잖아, 엄청 졸렸다고.”

“그럼 그냥 누워서 자, 미친놈아.”

“오이카와씨는 누구랑은 달리 섬세해서요. 너무 딱딱하면 잠을 못 자.”

하이고 그러세요, 하나마키는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는 듯이 스마트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 월요일에는 글쎄, 영화 보러 가자는 거야, 오이카와씨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차피 같이 노는 건 마찬가지잖아.”

“아니거든! 그 이와쨩이 먼저 나가자고 했다고! 팝콘 하나 나눠 먹고 카페에 가서 케이크도 시켜주고, 이거 어쩐지, 어쩐지…”

데이트 같잖아. 그 단어 하나가 너무나도 부끄럽고 두근거려서 오이카와는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괴로워했다. 물론 이와이즈미의 의도가 어떻든 별 생각 없이 하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행동에 의미부여를 하며 설레는 제가 너무 한심해서, 한심하고 눈물이 나서 때때로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웃는 얼굴을 보는 게 너무 힘든데, 또 그 미소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서 나는.

“그러니까 요새 이와이즈미가 너한테 잘해주는 게 문제라 이거지?”

“그렇게 말하니까 좀 이상하긴 한데 하여튼 그래.”

“잘됐네.”

“뭐가?”

“너 이와이즈미 좋아하잖아.”

방금 뭐라고. 할 말을 잃고 그저 입만 벙긋거리는 친구를 보고도 하나마키는 그저 태평하기만 했다. 오히려 오이카와의 반응이 의외라는 듯이 눈썹을 치켜들고 되묻는 것이었다.

“왜, 틀린 말이라도 했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또 왜.”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눈이 달려 있으니까 알았지.”

왜는 내가 왜, 다. 오히려 어떻게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지 되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소년은 혼란에 빠진 친구를 내버려두고 초코볼 하나를 뜯어 우물거렸다. 두 사람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와이즈미를 향한 오이카와의 호의는 너무나도 명백하고 곧아서,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지경이었다. 부실에서, 또는 교실에서 조금만 재미있는 일이 생겨도 오이카와는 꼭 큰일이 나기라도 한 것처럼 이와이즈미를 찾아대곤 했다. 그건 우울할 때나 피곤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희로애락의 순간에 오이카와는 단 한 사람의 이름만을 불렀던 것이다. 하나마키는 정신을 반쯤 잃은 상태에서도 귀신같이 이와이즈미의 품으로만 파고들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곤 진저리를 쳤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소꿉친구인 이와이즈미 하지메를 좋아한다. 이는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과 같이, 하늘이 푸르다는 사실과도 같이 배구부원들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기도 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떠들어내는 것만큼 지루한 일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그 누구도 입때껏 오이카와의 짝사랑에 대해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어쩐지 민망해서 죽을 거 같다… .”

“오, 그래그래. 계속 부끄러워해. 지금까지 널 보는 우리가 부끄러울 지경이었으니까.”

“맛키… .”

“오냐.”

“이와쨩은 모르겠지?”

“글쎄.”

안다면 알 수도 있고, 모른다면 모를 수도 있고. 우리야 제삼자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와이즈미는 아무 생각도 없지 않을까. 너무 가까운 것도 또 큰일이다. 하나마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친구의 가련하고 조그마한 갈색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경박하고 하나밖에 모르는 바보지만 싫진 않다. 질질 끌려다니면서 마음고생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친구로서는 영 재미가 없는 것이다.

“사실 난 이와이즈미가 너랑 그렇게 붙어 다니면서 뒤치다꺼리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으응.”

“그냥 고백 해보는 게 어때.”

“무리야.”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커다란 몸을 웅크리고 그 잘난 얼굴을 책상에 꼴사납게 눌러놓고, 떨리는 목소리로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했다. 평소의 요란스러운 기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와쨩한테 차이면 그땐 정말 세계가 멸망하고 말 거야.”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가 좋아. 소년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귀를 기울여 듣지 않으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목소리였다.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딴에는 좋게 달래보려고 했지만 오이카와는 아무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하나마키는 무거운 공기를 날려버리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밖의 매미들이 어지럽게 울어대고, 습기를 한껏 머금은 더운 바람이 넘실넘실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여름이다. 페트병에 맺힌 물방울을 보며 소년은 생각했다. 인터하이 현 예선전이 끝난 지 꼭 한 달이 지났다. 레귤러진은 어떻게든 남았으나, 3학년들 중 은퇴한 부원들도 많았다. 봄고가 끝나고 나면 남은 3학년들까지 모두 은퇴해버리고, 수험공부를 하고 또 졸업하고,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상경할 것이다. 모든 것들이 변하기 마련이다. 영원히 계속되는 관계란 없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도망치고 있지 너, 하나마키는 끝끝내 그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

여자아이들은 귀엽다. 제게 호의를 보이는 존재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에 잘못 발을 들이지만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귀엽고 얌전한 여학생과 사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이카와는 방글방글 웃고 있는 소녀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이 중에서 몇 명이나 저를 진심으로 좋아해 줄까. 교내 유명인에게 사춘기 소녀들이 갖는 흥분감은 마치 가벼운 열병 같은 것이라, 몇 년 후에는 너 그 사람 좋아하지 않았었어? 기억해? 어땠더라, 하고 서로 묻다가 까르르 웃으며 넘어갈 그런 감정에 불과했다. 오히려 감정의 무게로 따지자면 같은 반 남학생에게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겨우 말 한마디 붙여보고, 아무것도 아닌 척 장난치는 그런 것들이 더 무거운 연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이즈미군, 잠깐 시간 괜찮아? 실험조 때문에 그러는데…”

바로 이런 거 말이다.

실험조는 무슨. 이미 한 달 전에 다 정해진 걸 가지고 뭐 그렇게 할 말이 많다고 굳이 사람을 불러내는 건지. 오이카와는 애써 눈 앞의 소녀들에게 웃어 보이면서 그 광경을 힐끗 쏘아보았다.

두 소녀의 팔랑팔랑한 스커트 자락이 제 눈앞에서 보란 듯이 흔들린다. 한 사람은 이와이즈미에게 사랑의 화살을 쏘아 보내는 우리 반 여자아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제 친구의 연애를 도와주겠다며 나서는 단짝. 왜 여자들은 서로의 연애에 자기 일 마냥 나서길 좋아할까. 문제는 저렇게 슬금슬금 제 마음을 숨기고 이와이즈미에게 말을 거는 여자아이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이카와가 아는 것만 벌써 세 명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진가가 드러나기라도 하는 건지, 이와이즈미에게 호의를 가진 여학생은 많았고 말 못할 짝사랑을 시작한 여학생들도 제법 되었다. 보는 눈이 있네. 소년은 멀거니 그 광경을 지켜보다 제 주위에서 눈을 반짝거리며 빛내는 아이들에게 기계적으로 말대꾸를 해주었다.

‘내가 더 먼저 좋아했는데.’

이와이즈미군 좀 멋지지 않아? 운동도 잘한대. 그 멋진 이와이즈미군이 어릴 적에는 얼마나 사고뭉치였는지, 지금도 남자들끼리만 있을 때는 얼마나 바보처럼 웃는지 그녀들은 알기나 할까. 교복만 입으니 사복 센스가 얼마나 이상한지도, 말보다 행동이 앞서서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도 아마 모를 거다. 사랑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부터 이와이즈미를 짝사랑해온 오이카와는 그가 얼마나 무심하고 바보 같고 섬세함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인간인지 아주 잘 알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제 가슴을 이렇게 뛰게 할 사람은 오로지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것도, 소년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오이카와의 짝사랑은 집요하고도 지독했다. 함께 해온 세월과 각고의 노력을 더한 끝에 그는 이 학교에서, 아니 모든 인간관계를 통틀어 이와이즈미와 가장 친한 친구라는 타이틀을 쟁취했다. 그러나 여자는, 여자애들만은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다. 10년 우정도 여자 하나 때문에 갈라지는 세상이다. 더군다나 제가 품고 있는 것은 우정과 같이 깨끗한 단어로 포장해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말을 걸던 소녀의 목소리를, 제 앞에서 팔랑거리던 베이지색 스커트를, 고동색 머리 위에서 빛나던 진주 핀을 떠올렸다. 애초에 출발선부터 다른 게임이다. 한평생 단 한 번도 여자가 되고 싶었던 적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그는 언제나 이와이즈미에게 호의를 가진 소녀들 앞에서 못내 비참했다. 어찌 되었거나 절대로 이길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지금까지는 할 만 했다. 적어도 이와이즈미는 언제나 오이카와를 우선해주었으니까. 오이카와는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쌀알을 정성스럽게 씹어 삼켰다. 비참한 사실을 상기하며 밥을 먹으니 인기 절정의 한정판 주먹밥을 먹는데도 꼭 모래를 한 움큼 털어 넣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한 톨까지 기어코 꼭꼭 씹어 넘기고 나자 눈앞의 소꿉친구가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릿느릿 일어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와쨩 어디가?”

“이케다가 잠깐 좀 보재.”

“…어디서?”

미술실에서. 이런 데서도 무심한 구석이 있는 이와이즈미는 제 마음도 모르고 다른 여자 만나러 간다며 선언질이다. 나쁜 자식. 그렇다고 해도 뭐라 할 말이 없으니 괜히 행선지나 묻고 보내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오이카와는 장난스럽게 휘파람을 불며 손을 휘휘 저은 다음, 이와이즈미가 교실 밖으로 완전히 나가고 난 뒤에야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릴 적 이와이즈미와 함께 누나가 고백받는 장면을 훔쳐본 다음, 이제부터 저 형이랑 연애하느냐고 쫓아다니며 물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 철없던 행동의 연장 선상일 뿐이라며 자기 합리화도 했다. 어차피 사내들도 제 친구 연애사에는 관심이 더럽게 많은 법이다. 그러니 오이카와도 제 소중한 ‘소꿉친구’의 연애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미술실 옆 창고에서 일이 어떻게 되는지나 지켜볼 생각이었다. 이 모든 장황한 수식어를 더해서 오이카와 토오루를 변호해주자면, 짝사랑을 오래 하다 보니 눈에 뵈는 게 없었다는 소리다.

“나, 전부터 이와이즈미군을…”

막상 고개 숙인 소녀의 뒷모습을 보자 눈앞이 깜깜해진다. 이와이즈미가 버릇처럼 뒷머리를 긁으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도 그랬다.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이케다 테루코의 고백을 거절했다손 치더라도 그저 세상의 종말이 한 달이나 두 달쯤 뒤로 미뤄졌을 뿐 여전히 제 세계는 멸망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새삼 일깨워줄 뿐이었다. 좋겠다. 좋겠다. 오이카와는 창틀 밑에 조용히 주저앉아 신경질적으로 제 무르팍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되뇌었다. 좋겠다.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여자애는, 여자는, 여자들은 언제고 이와이즈미를 저에게서 빼앗아 갈 수 있었다.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을 재확인 당한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좋겠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어서. 세상이 두 쪽이 나도 제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토해낸 여자아이를 부러워하면서, 그 동그스름한 얼굴을 굴곡 있는 몸매를, 그리고 결 고운 긴 머리를 부러워하면서 또 동시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미워하면서 오이카와는 조금 울었다. 온몸을 부딪쳐 고백한 그녀의 용기를 부러워하고 또 동경했다. 오 분쯤, 아니 십 분쯤 지나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진정되었을 때 소년은 자그마한 결심을 하고 창고를 나섰다.

***

월요일이었다. 방과 후에는 이와이즈미의 기행에 어울려 함께 시내로 나갔다. 스포츠용품점에 들러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목적 없이 돌아다니고, 배고파져서 단골 라면집에 들른 것도 데이트라고 할 수 있다면 데이트다. 이와이즈미는 별생각이 없었겠지만 적어도 오이카와에게는 그랬다.

돌아오는 길에 이와이즈미는 으레 그랬던 것처럼 말없이 손을 잡아왔다. 손가락 사이로 전해지는 온기를 차마 거부할 수가 없어서, 오이카와는 마주 잡은 손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늘 이런 식이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이중 삼중으로 계산해서 행했던 모든 일을 그는 거리낌 없이 해치우곤 했다. 네가 손을 잡아올 때마다 내가 얼마나 떨렸는지, 너는 모르지. 평생 모르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이와이즈미는 대문 앞에서 제 손을 놔주었다. 오이카와는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와이즈미를 불렀다. 가장 친한 친구로 보내는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그는 몇 번이고 눈을 깜박거렸다. 기분에 따라 이따금 험하게 구겨지는 미간에 조금 치켜 올라간 날카로운 삼백안, 남자다운 생김새를 때때로 한없이 소년처럼 보이게 하는 콧날과 입술 끝으로 이어지는 라인. 그리고 언제나 저를 보고 티 없이 웃던 여름 햇살 같은 그 미소.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본 모습들이 사진처럼 고스란히 마음에 남았다.

“이와쨩.”

“왜.”

“내일부터 따로 가자.”

“뭐?”

“손도 안 잡을 거고, 이제 학교 밖에서는 만나지 않을 거야.”

안타깝게도 오이카와의 말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이 길게 한숨을 쉬고, 다소 퉁명스럽게 되물었던 것이다.

“뭐가 문제야, 연습 못 하게 한 거 때문에 그래?”

“그런 거 아니거든?”

“…설마 이케다랑 만난 거 때문에 짜증 내는 거야?”

“그것도 아니야.”

사실 맞긴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소년은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참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그의 세계는 총 네 번 무너져내렸다. 그중 세 번은 이와이즈미 때문이었고 나머지 한 번은 이와이즈미가 멱살을 잡고 끌어내어 미수에 그쳤다. 오이카와의 세계를 만드는 것도 부수는 것도 언제나 이와이즈미 하지메 뿐이었다. 제 마음을 들키고 친구로도 남지 못할 게 두려웠다. 마지막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세터와 에이스의 사이가 틀어질까 봐 신경이 쓰인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희망 고문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정말로 세상이 멸망해 버리면 좋을 텐데.

“…좋아해.”

고백이 아니라 흡사 선전포고다. 그만큼 오기만으로 가득한 말이었다. 삐죽삐죽 가시가 돋친 그 한 마디에 이와이즈미는 놀란 듯이 이쪽을 바라보다가, 평온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어, 나도.”

나도? 나도라고? 그 순간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참았던 눈물이 어느새 뚝뚝 떨어져 내렸지만 소년은 흘러넘치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매섭게 눈앞의 남자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 토오루를 제 연애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농담하는 거 아니야. 진지하게 들어. 내가,”

“듣고 있어.”

“제대로 들어주지 않으면 차도에 뛰어들 거야.”

좋아, 이 길로 뛰쳐나가 죽어버리자. 오이카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이와이즈미 또한 그의 엄숙한 선언이 진심이라는 걸 알아들은 듯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좋아해.”

“… … .”

“그치만 이와쨩이 날 좋아할 리가 없으니까, 친구만은 계속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어.”

혼자 설레고, 혼자 좋아하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가가 빨개지도록 엉엉 우는 친구를 보고 이와이즈미는 말을 잃은 듯이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한일자로 굳게 입을 다물었다. 위로할 말이라도 고르는 거겠지. 마지막까지 쓸데없이 상냥하다. 시야를 흐릿하게 가리는 눈물들을 조용히 훔치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 모든 과정을 이와이즈미는 험악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할 말 다 끝났냐?”

“응.”

“일단 확인하는 건데 차도로 뛰어들지 않을 거지?”

“…응.”

“약속해.”

“약속할게.”

“좋아. 그건 그렇고 너 열사병 때문에 쓰러졌던 날 기억해?”

응. 숨이 모자라 반쯤 헐떡거리면서, 소년은 희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언덕길에서였나, 그거 보고 이와쨩이 달려왔잖아. 그 말을 들은 이와이즈미의 표정이 한층 더 험해지는 것을 보고 그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사람이라도 하나 죽일 듯한 사나운 얼굴이다.

“아-. 뭐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

그렇게 말하고 이와이즈미는 저벅저벅 다가와 오이카와의 손을 쥐었다. 토스와 스파이크로 울퉁불퉁 굳은살이 잡힌 커다란 손이 서로 견고하게 얽혔다. 모든 것이 끝난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사랑스러워서 오이카와는 견딜 수가 없었다. 좋아, 역시 이와쨩이 좋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 가망 없는 사랑이라는 걸 알면서도 버리지 못한 마음이 아직 한가득이었다. 소리 없이 천천히 다가오는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고,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거스러미가 일어나 조금 거친 입술이 짧게 뺨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뭐야.

뭐야, 이거.

혼란스러운 나머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바라보는 연인을 보면서,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더는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고요한 골목길에 낮은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당장에라도 도망칠 듯이 움찔거리는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소년은 한없이 부드럽게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오이카와, 나는 너를… .”

좋아해.

좋아해, 이와쨩. 떨어지지 마.

겨우 침대에 누운 소년은 반쯤 흐느끼며 그렇게 말했다. 물만 떠오겠다고 해도 요지부동이라, 두고 가지 않겠다고 수십 번을 다짐한 다음에야 이와이즈미는 겨우 잡은 손을 놓을 수 있었다. 너 물 안 마시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며 그렇게 말해보았지만, 울음을 그치게 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죽어도 상관 없어, 이와쨩이 가버리면 정말로 죽어버릴 거야. 그렇게 말하는 오이카와를 달래느라 눈가에, 그리고 뺨에 입을 맞추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좋아한다고, 좋아한다고 몇 번을 말해야만 했던가. 누군가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어이가 없어 웃어버렸겠지만, 당사자들은 한없이 진지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웃지 못할 촌극을 벌여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먼저 고백한 주제에 어쩐지 태도가 이상하더라니 마는.

작게 투덜거리며 이와이즈미는 사람 속도 모르고 곤히 잠든 연인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토록 속을 썩이던 사고뭉치가 놀라울 정도로 쉽게 팔 안으로 굴러들어왔다. 눈물범벅인 얼굴로는 차마 집에 들여보낼 수가 없어서 이와이즈미는 제집 뒷문으로 오이카와를 밀어 넣었더랬다. 교제 이후의 첫 숙박임에도 불구하고 두근거림이나 설렘이라곤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제와서 설레기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장소인데다가 두 사람 모두 완전히 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오이카와의 경우에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것이 기적일 지경이다. 며칠 동안 바보 같은 생각만 하고 살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시 고백해올 줄은 몰랐는데.”

이와이즈미는 사뭇 즐거운 듯이 중얼거리며 규칙적으로 상하 하는 등을 도닥거렸다. 배구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이카와는 제가 좋아하는 것에는 온몸을 다 바치는 성품이었다. 물론 사랑에 빠졌을 때도 물불 가리지 않는 태도는 여전했다. 열에 취한 채로 흘린 말들도, 차도에 뛰어들겠다던 선언에도 한 치의 거짓은 없었을 것이다. 이상한 녀석한테 반하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이다. 듣도 보도 못한 놈팽이에게 눈이 돌아갔을 경우 펼쳐질 수라장을 상상하자, 순간 아찔할 지경이었다.

가슴 속 깊이 탄식하면서도 그는 품 안의 온기를 놓을 생각이 없었다. 이 녀석이 목숨을 거는 건 배구하고 나 하나면 족해. 이번에야말로 도망가지 못하게 꼭 껴안고서,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는 꿈속으로 천천히 잠겨 들었다.

녹음이 낭창하게 우거지기 시작한 어느 여름날의 일이었다.

 

제가..제가 솜스님께 글 선물을 받았어요…사실 지금도 믿기질 않는 ㅠㅠㅠㅠㅠ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이와오이를 써주시다니 행복사할것같아여ㅠㅠㅠ

150401 from.노리

g-13

헤헤헤 만우절 장난 칠 때 노리님이 그려준 이와오이 헤헤헤^///^
저 위에 적먹파자 잘해줄게라고 써있는 이유는…설명하려니까 뭔가 복잡하네요..어쨌든 만우절 장난 치느라 그랬던거구요..
휴 노리쟝이 그려주는 이와오이 최고야ㅠ0ㅠ~ 행복..행복…으앙아아ㅠ0ㅠㅠㅠㅠㅠㅠ

150308 from.노리

g-12

ㅠㅠㅠ..ㅠㅠ…노리님이 저에게 이와오이를 선물해주었어요!!!!
이와오이..이와오이 최고ㅠ0ㅠㅠㅠㅠㅠ노리쟝의 오이카와랑 이와쨩 마지핸섬 우욱크우욱 ㅠ0ㅠ0ㅠㅠㅠㅠ